THE EXPRESSIONIST · BRIEF

중동 판 짜던 미국이 물러난다 … 빈자리는 누가 채울까?

이번 커버의 쟁점은 "미국이 중동을 떠나느냐"가 아니다. 미국은 대테러 작전과 무기 판매, 협상 중재를 이어 가며 남는다. 이코노미스트가 끝난다고 보는 것은 설계자 역할, 문제가 생기면 걸프가 언제든 워싱턴에 전화하면 되던 보증인의 자리다. 그 자리를 이어받을 나라는 없다. 이란과 이스라엘은 질서를 깰 힘은 있어도 지을 힘이 없고, 튀르키예는 여러 나라의 의심을 산다. 가장 크게 잃는 쪽은 아랍 국가들이다. 미국의 목표가 한 번도 아랍 국가의 유능함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탓도 있다. 그래서 이번 호의 결론은 당분간의 혼란, 그리고 길게 보면 아랍이 스스로 더 나은 것을 지을 기회다.

이달 사우디아라비아가 예멘 후티 반군을 함께 공습하자고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거절했습니다. 미국 대표단은 대신 사우디 몰래 오만에서 후티 측을 만나 홍해의 미국 배는 공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습니다. 이코노미스트는 "초강대국이 반군과 따로 거래하면 발을 빼고 싶다는 뜻" 이라며, 이번 주 표지로 '미국이 떠날 때' 로 잡았습니다.

미국이 중동을 아예 떠난다는 뜻은 아닙니다. 대테러 작전과 무기 판매, 평화 협상 후원은 계속됩니다. 이코노미스트의 표현으로는 후퇴(retreat)가 아니라 축소(retrenchment)입니다. 끝나는 것은 설계자(architect) 역할입니다. 기사에 인용된 한 걸프 관리의 말대로 지금까지는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 워싱턴에 전화하면 됐습니다. 이란 전쟁이 어떻게 끝나든 그 전화를 받아 주던 보증인은 사라지고, 한 세기 전 강대국들이 오스만 제국을 나눠 가진 뒤 처음으로 중동의 질서를 바깥에서 정해 주는 나라가 없어집니다.

걸프 동맹이 미국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은 좀 됬습니다. 이코노미스트가 돌아본 35년 동안 이라크와 리비아, 시리아, 예멘 개입은 혼란을 남기거나 아예 실패했습니다. 2019년 사우디 유전과 2022년 아부다비가 이란이 뒤를 봐준 공격을 받았을 때 미국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이 오래 막으려던 걸프 전쟁을 스스로 시작했습니다. 미국인 60%가 이라크 침공을 실수라고 답하기까지 4년이 걸렸던 것이 이번 전쟁에서는 두 달도 안 걸렸습니다.

미국이 중동에 매달릴 이유도 줄었습니다. 2020년까지 원유를 수입하던 미국은 이제 거대한 수출국이고 걸프 원유의 최대 고객은 중국이어서, 이코노미스트가 보기에 미국 중동 정책의 덕을 가장 크게 보는 바깥 나라는 중국입니다. 오바마 정부가 처음 꺼낸 아시아로의 전환은 방향을 틀 때마다 360도를 돌아 제자리로 왔다는 워싱턴의 단골 농담이 됐지만, 이번에는 돌아올 형편이 아닙니다. 국방부는 항공모함의 5분의 1을 걸프에 묶어 둘 여유가 없습니다.

미국이 비운 자리를 대신 맡을 나라는 없습니다. 사우디가 도움을 청하자 영국이 내놓은 것은 공중급유기 한 대였습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묶여 있고, 중국은 근래 국경 밖에서 제대로 된 군사작전을 해 본 경험이 없습니다. 후보는 역내 비아랍 국가 셋뿐입니다. 이란은 미사일과 대리 세력을, 이스라엘은 중동 최강의 군대를 가졌지만, 이코노미스트는 둘을 질서를 흔들 힘은 있어도 지을 힘은 없는 거울상이라고 부릅니다. 튀르키예는 군사와 외교 모두 강하지만 이란과 이스라엘은 물론 여러 아랍 국가의 의심을 삽니다.

이란 정권이 살아남으면 호르무즈 해협을 쥐고 전쟁 중 자기가 공격했던 걸프 국가들을 윽박지를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내다봅니다. 그 해협을 지나는 값은 이미 유조선 운임에 나와 있습니다. 원유 200만 배럴을 싣는 초대형 유조선의 하루 운임은 평균 65만 달러(약 8억 8,000만 원)로 1월의 여섯 배가 넘고, 호르무즈를 직접 건너는 몇몇 배는 하루 100만 달러(약 13억 6,000만 원) 넘게 받습니다. 선주에게는 호시절이고, 그 돈은 나머지 거의 모두가 치릅니다.

가장 크게 잃는 쪽은 아랍 국가들입니다. 걸프 왕정들이 택한 번영의 길부터가 미국이 지켜 준다는 전제 위에 있었습니다. 미국이 원한 것은 석유가 계속 흐르고 이스라엘이 안전하고 기지가 유지되는 것이었는데, 어느 것도 아랍 국가가 유능하거나 잘살아야 이룰 목표가 아니었고 몇몇은 그렇지 않을 때 오히려 쉬웠습니다. 사우디와 UAE가 두 나라를 모두 위협하는 후티를 두고도 예멘에서 협력하지 못하는 것도 미국 시대가 낳은 필연적 결과라고 이코노미스트는 말합니다. 사우디가 새로 발표한 홍해 해양 동맹에는 5,000km 떨어진, 변변한 원양 해군도 없는 방글라데시까지 들어 있어서, 이코노미스트도 이런 협정들을 아직 막연한 희망 수준으로 봅니다.

그래도 이코노미스트는 길게 보면 미국 시대의 끝이 나쁜 일만은 아닐 수 있다고 봅니다. 트럼프가 망치지 않았더라도 지난 35년 동안 미국의 존재는 약해졌고, 오랜 보증인이 사라진 아랍 국가들은 이제 각자도생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떠나는 미국이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 있다면, 새 질서가 아니라 카타르와 사우디, UAE가 서로 손잡도록 돕는 일 정도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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